"〈금강경〉을 읽고 나서 슬펐습니다. 〈금강경〉엔 부처님이 말하는 구도의 길이란 모든 사람을 평안하게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이끈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네요 또. 자기를 버려야 하고, 살아있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고, 개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하고…. 그러면서 진실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이다, 몸이 몸이 아니기 때문에 몸이라고 부른다 그러거든요? 나중에 가면 너무 허무해서 슬퍼져요. 슬픔이 이렇게 밀려드는 경전은 처음 봤어요."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제작 기획시대·이하 성소)을 갖고 '재림'한 영화배우 장선우(49) 감독은 이 영화 3단계에 해당하는 클라이막스에 〈금강경〉의 한 구절을 삽입했다.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는 뜻의 이 경구를, 그가 총제작비 110억원을 투입한 SF액션영화 성소에 넣은 이유는 뭘까. 지난 4일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에서 영화 편집 막바지 작업에 혼신을 쏟고 있는 그를 만나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는 다 SF적인 접근이고 가상현실을 둘로 나누는 행위 자체가 참 불편했었죠. 이원론이 주는 압제와 억압이 너무 싫던 끝에 너와 나를 나누지 않는데서 출발하는 〈금강경〉에 끌렸습니다."
계속된 개봉 연기와 계획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제작비, 철저한 보안 속 촬영 등으로 갖가지 소문과 궁금증을 낳았던 성소는 '성냥팔이 소녀 구출 게임'에 우연히 접속한 자장면 배달부가 게임 속 여주인공 성냥팔이 소녀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가두고 있는 시스템과 대결한다는 내용으로 가상현실을 인터랙티브 게임 형식으로 풀어간다. 이 영화는 특히 모 핸드폰 광고 모델 출신인 임은경과 그룹 노바소닉의 보컬 김진표, 재중동포 트랜스젠더무용가 진싱, 가수 강타, 무술 감독 정두홍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세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가상과 현실 사이서 피안 향한 과정 그려
언뜻 보면 단순한 환타지 게임영화나, 그는 불교적 사상이 듬뿍 담긴 '불교영화'라고 장담하듯 말했다. "스님들이 수행은 마음에서 일어난 온갖 잡다한 상념과의 일종의 싸움이겠죠. 마음과 몸이 별개가 아니니까 구도라는 그 싸움에 악마구리들이 와서 유혹하고 갈등도 일으키죠. 그게 형상화되면 엄청 큰 것이고, 결국 우주를 다투는 싸움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그는 성소에 나오는 권총 소총 샷건 MP5 등 33정의 총기와 가상현실의 밀고 당기는 게임도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허물라고 선동하는 영화의 주제를 말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했다. 가상현실이 현실의 연장이라고 보려는 최근의 가상현실 이론을 넘어서 아예 실재 현실과 가상현실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게 그의 의도였다.
영화의 후반부 성냥팔이 소녀는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장 감독은 이 바다가 해인(海印)이라고 했다. "〈화엄경〉에서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바다에 비유하잖아요. 거친파도와 같은 중생의 번뇌망상이 멈출 때 우주의 삼라만상이 그대로 물에 비치는 경지, 공(空)이기도 하고 실재이기도 하고…." 지난 93년 그가 만든 영화 '화엄경'에서도 그의 '구도정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민주와 반민주의 전선이 남아있던 그 시절 그는 '화엄경'에서 세인과 구도자 모두 연민으로 바라볼수 있는 '눈'을 제시했다. 모든 욕망 세속적 재미 다 가지고서 여기 속세에서 저기 피안의 땅으로 힘든 강을 건너자는 메시지. 그는 끝까지 〈금강경〉을 이야기했다."강을 건너 피안으로 갔다면 뗏목도 버려야 하죠. 그것이 〈금강경〉이 말하는 지혜 아닌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