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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으로 내몰린 아이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05-11 조회수 5165
세계일보
[김주영 칼럼]문밖으로 내몰린 아이들

앳된 소년소녀들이 부모 없이 애옥살이를 겪고 있는 가정을 찾아가 보면, 차라리 찾아오지 말 것을 그랬다는 후회가 금방 가슴을 친다. 학교 근방이나 혹은 마을의 놀이터에 나가서 또래들과 어울려 뛰어 놀다가 해거름이 되어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올 그런 철부지의 나이에 터울도 길지 않은 동생의 끼니를 위해 밥을 짓고 있는 형이나 누나들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미어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로 책보자기를 툇마루에 던지고 사립문 밖으로 내달아 진흙탕이건 풀밭이건 가릴 것 없이 안고 넘어지고, 밀고 당기고, 곤두박질치며 짓까불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러다가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 사방이 어두워지면, 저녁밥을 지어놓고 저 멀리 봇도랑까지 아이들을 찾아 나선 어머니의 목멘 고함 소리가 들려 왔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밥 먹여주고 옷 빨아 입히는 그런 어머니가 곁에 있었기에 세상물정이야 어떻게 돌아가건 알 것 없이 뛰놀고 짓까불었던 그런 아이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이른바 한 가정의 가장으로 행세하며 쪼들리는 집안살림을 꾸려 가고 있다.

가슴속에는 일찍부터 고약같이 멍울진 회한이 자리잡아 말수가 적고, 어른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는 시선은 언제나 먼 곳으로 달려간다.

자신은 허리가 휘도록 배가 고파도 아우를 위한 끼니는 축내는 법이 없다. 달래고 어루만져 겨우 무거운 입을 열게 할 수는 있지만, 울적하거나 파리한 얼굴에 묻는 말마다 모른다는 대답뿐이다.

항상 남의 집 담 장 밑에 우두커니 앉아 해바라기하며 시간을 보냈으므로 바지 엉덩이에는 언제나 흙이 묻어 있다.

그 아픔, 그리고 절망을 사회가 모두 치유해 줄 수 없지만, 요사이를 살아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너무나 손쉽게 아이들을 문 밖으로 내몰아 버리거나, 아니면 가차없이 떠나간다.

야만적 범죄와 다름 아닌 일을 저지르는데도 거기에 합당한 고민이나 갈등을 겪기를 싫어한다. 자신들이 버린 혈육들을 보호시설에 맡기는 일까지도 기피하고 있다. 그것조차 귀찮고 번거롭기 때문일까. 아니면 죽이지 않고 떠나는 것도 다행으로 알라는 뜻일까.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언제나 화기애애하고 평화스러우며 걱정거리 한 가지 없이 순탄하게 살고 있다는 평판을 듣는 가정이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가정에도 남에게 차마 말못할 애꿎은 일이나, 눈물겨운 고통을 남몰래 겪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다만 그 고통의 응어리나 흔적을 남이 알세라 애써 감추려하기 때문에 겉으로 얼른 보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나 파멸은 십중팔구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면, 그것의 해결도 달거나 쓰거나 모두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엔 자신에게 닥친 횡액이 내 탓이 아닌 남의 탓, 혹은 남이 훼방을 놓았기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다는 배신감이나 적개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그런 잘못된 사고방식이 애꿎은 피붙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행으로 되돌아간다면 이것은 분명 범죄 수준의 날벼락이다. 시쳇말로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부모가 떠안아도 평생의 중량으로 짓눌릴 크나큰 고통을 안기는데 주저가 없는 것일까.

감히 말하거니와 지금 우리 사회가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는 데 열중할 것이 아니라, 사소하거나 하잘것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다가 언제 고무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터져버린 다음에는 수습의 방도조차 찾아내지 못할 것이 분명한, 우리의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자신에게 닥친 불가피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서서 책임질 줄 아는 사회적 기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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